반만년(半萬年)의 유구한 역사를 누려오는 우린 한민족(漢民族)에 있어서의 교육의 역사 또한 오래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나 아직까지 이에 대한 사료(史料)가 발견되지 않아 정확히 어느 때부터 교육 기관이 설치되어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알려진 문헌에 따르면 4세기 말로 되어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의 내용에 따르면 고구려(高句麗) 소수림왕2년(372)에 태학(太學)을 세워 자제들을 교육했다는 기록이 이다. 이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교육에 대한 최고(最古)의 기록인데, 태학이란 오늘의 국립대학(國立大學)과 같은 것이다.
그러면 우리 태안군에서는 어느 때부터 교육 기관이 설치되어 자제 교육에 임했을까 매우 궁금한 일이지만,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부진 상태여서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다.
태안군은 일찍 삼국시대의 백제(百濟) 영토에 속해 있었는데, 백제는 3국 중에서 고대국가(古代國家)의 완성을 가장 짧은 기간에 이룩한 나라요, 그리고 일찍 발달한 대륙문화를 받아들여 백제문화의 특색과 그 화려한 꽃을 피게 했던 것이다. 또한 백제는 박사제도(博士制度)를 두어 일찍 오경박사(五經博士)를 배출시켰는데, 이들은 자주 일본(日本)에 초청되어 그곳에서 농업기술·천문학·지리학·미술·공예 등 여러 분야에 걸쳐 가르쳐 줌으로서 일본(日本) 고대문화의 기틀을 마련해 주었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 태안군도 예외가 아니어서 어떤 교육기관이 설치되어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 태안 지역이 우리나라 불교 조상미술(佛敎彫像美術)의 선진 지역임을 볼 때 역시 교육이 발달하고 있었음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의 태안의 교육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전래하는 기록이 없어 그 실상을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高麗時代)에 들어와서는 태안 지역에도 교육기관이 설치된 것으로 여겨진다. 태안군 신학기(泰安郡新學期)에 따르면 태안군 출신 이대순(李大順)이 원(元)나라에 벼슬하여 황제로부터 총애를 받아 출신지인 소태현(蘇泰縣)이 태안군(泰安郡)으로 승격되고 따라서 학당(學堂)을 세워 인재를 육성하라고 하였으니, 이때는 14세기 초엽인 고려 충렬왕 때이다.
그 뒤 충정왕 2년(1350)에 「왜구가 침입하여 주민들은 사방으로 흩어져서 관청의 업무는 마비되고 마을은 잡초만 무성하니 어찌 학당만 남아 있으리요」 이 같은 내용으로 보아 침입한 왜구에 의해 학당이 불타버렸음을 추측케 한다.
40년 후 공양왕 2년(1390)에 초가(草家) 몇 칸을 짓고 학당을 설치했다는 기사가 이를 충분히 입증해 주고 있다. 학당이 그대로 있었다면 다시 초가를 지었을 리가 없다. 이러한 기록 등으로 보아 태안에는 이미 고려 시대인 14세기 초엽에 학당이 설치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나 이것이 향교(鄕校)의 시초였는지 아니면 서당(書堂)이었는지 그 규모와 설치 장소 및 교육 과정 등을 알 수 없다. 우리나라에 향교가 처음으로 창건되는 것은 고려의 인종(仁宗) 5년(1127)인데, 이것이 전국적으로 퍼지어 지방 교육에 큰 발전을 가져오는 것은 역시 조선조에 들어와서 이다.
이태조(李太祖)는 즉위와 동시에 3대 정책의 하나인 배불숭유(排佛崇儒)의 문교정책(文敎政策)을 실시하면서 각도의 안찰사(按察使)에게 명하여 교학(敎學)의 쇄신을 도모하는 한 편, 각 부·목·군·현에 1개교씩 향교를 설립케하니 점차적으로 확대되어 마침내 전국적인 향교의 설립을 보게 된 것이다. 이 무렵에 우리 태안에도 향교가 설립되는데, 이것이 조선조의 태종(太宗)7년(1407) 지금의 태안읍 동문리 샘골에 초가로 세운 것이다.
그 뒤 오늘의 태안중학교 자리로 옮겨짓고 자녀 교육에 매진하여 오다 다시 현 위치인 태안읍 동문리 725번지로 두 번째 옮겨짓고 오늘에 이르는 것이다. 조선조의 숙종46년(1720)에 현 위치로 옮겨짓고 무려270년간 내려오면서 수차에 걸친 중수 및 보수를 거쳐 오늘의 건물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이 오늘의 태안향교(泰安鄕校)가 조선조의 초기에 창건되어 조선조500년의 문교정책을 충실히 이행하면서,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많은 인재를 육성하고, 지역발전에 기여한 업적이 매우 큰 것이다. 태안향교는 지금도 충효교실을 개설하고 하계방학 기간을 이용하여 학생들에게 직접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사회 교육을 실시하고 있어 오늘의 향교가 사회교육기관으로서의 각광을 받고 있다. 580여 년의 긴 역사를 자랑하는 태안향교는 태안교육사의 측면에서 볼 때 문헌상에 나타난 최초의 교육기관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