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태안읍은 처음부터 오늘의 장소에서 발전하여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변천과 정치적 변혁에 따라 읍터(邑址)를 여러번 옮겼음을 알 수 있는데, 현재의 태안읍터는 조선조(朝鮮朝)의 태종(1401~1418) 때에 옮겨 온 것이다.
서산군지(瑞山郡誌)와 조선환여승람(朝鮮換與勝覽)에 따르면 순성군(蓴城郡) 시대의 읍터는 지금의 태안군 원북면 대기리였으며, 소성현(蘇城縣) 시대는백화산성(白華山城)이었고, 소태현(蘇泰縣) 시대는 백화산 사양동(斜陽洞) 그리고 조선조(朝鮮朝) 시대는 현재의 위치로 옮겼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대기리·백화산성·사양동·현위치 등으로 옮기면서 오늘의 태안이 발전하여 왔는데, 사양동은 지금의 동문리 샘골을 말하는 것이다.
왕조(王朝)의 교체와 정치적 변혁(變革)에 따라 서울을 옮기고 제도를 바꾸는 것이 동양 사상(東洋思想)의 기저(基底)였다.
이같이 태안읍도 정치적 변혁에 따른 행정 제도의 개편과 미래의 구상 등에 따라 읍터를 여러번 옮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