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애삼존불(마애3불)은 태안읍사무소 뒤에 우뚝 솟아 있는 백화산 중턱에자리한 태을암(太乙庵)의 동쪽 약 50미터 지점에 있는 자연 거석의 암벽에 조각된 삼존불상(三尊佛像)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 마애삼존불은 보살입상(菩薩立像)을 중심으로 좌우에 여래입상(如來立像)이 조각되어 있는데, 만들어진 솜씨로 미루어 보아 6세기초엽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 마애불상의 크기를 보면 중앙의 보살입상이 181센티미터 좌우의 여래입상이 각각 255,240센티미터로 되어 있는데, 지난 1966년 2월 28일에 보물 제 432호로 지정되어 현재 관리 중에 있다. (보다 구체적인 내용은 제2절 전통사찰과 불상조를 참조하기 바란다.
이 흥주사 3층 석탑은 태안읍 상옥리(泰安邑 上玉里)산 1154번지에 자리하고 있는 흥주사 대웅전 앞의 3층석탑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 석탑의 창건 연대를 고려말기(高麗末期)로 보고 있는데, 지난 1973년 12월24일 충청남도 지정문화재 제 28호로 지정되어 현재 태안군이 관리 중에 있다. (보다 구체적인 내용은 제2장 고성과 석탑조를 참조하기 바란다.
이 석가여래좌상은 남면 몽산리(南面 夢山里)산 182번지에 자리하고 있는데, 어느 때 작품인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불상의 생김새로 미루어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석가여래좌상은 높이 103㎝ 어깨 폭 53㎝ 그리고 좌폭 83㎝인 화강석으로 되어 있는데, 1986년 11월 19일 충청남도 지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도어 현재 태안군이 관리하고 있다. (보다 구체적인 내용은 제2절 전통사찰과 불상조를 참조하기 바란다)
이 경이정은 태안읍 동문리 573번지에 자리하고 있는데, 조선조(朝鮮朝)의 정종(定宗) 원년 (1399)에 창건된 누각형(樓閣形)의 목조 와즙 건물이다.
그 동안 수차에 걸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크기는 14평(47㎡)이다. 이 경이정은 1986년 11월 19일 충청남도 지정문화재 제123호로 지정되어 현재 태안군이 관리하고 있다. (구체적인 것은 제5장 누정조를 참조하기 바란다.)
이 안흥성은 근흥면 정죽리에 자리하고 있는데. 조선조(朝鮮朝)의 효종(孝宗)6년(1655)에 축조(築造)된 석성(石城)으로서 둘레 1,568미터에 높이는 3.5미터이다.
안흥성은 1976년 1월 8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11호 지정되어 현재 관리 중에 있는데, 동학혁명(東學革命) 때(1894)폐성되었다.(구체적인 내용은 제2장의 고성조(古城條)를 참조하기 바란다.
이 내파수도는 안면읍 승언리(安眠邑 承彦里)3,314번지에 위치한 섬을 지칭하는 것인데, 안면읍 소재지에서 9.7㎞떨어져 있는 동경(東經)126°14′,북위(北緯)36°27′에 자리한 낙도(落島)이다. 이 섬의 크기는 164.600㎡인데, 연안의 기암괴석(奇巖怪石)과 정상의 동백나무숲이 장관이며, 특히 200미터에 이르는 방파제(防波堤)가 전국 유일하게 구석(救石)으로 축조된 것이 특징이다. 이 내파수도는 1983년 3월 8일 충청남도 제 64호로 지정되어 현재 안종훈(安鍾勳)씨가 관리하고 있다.
태안에 향교가 창건(創建)된 것은 조선조(朝鮮朝)의 태종(太宗)7년 (1047)인데, 그 뒤에 2번씩이나 옮겨지어 현재의 위치인 태안읍 동문리 725번지에서 오늘에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다. 현재의 위치에서 270년을 내려오면서 여러번 보수하고 중수하여 오늘의 건물을 유지하고 있는데. 시설 규모를 살펴보면 대성전(大成殿)·명륜당(明倫堂)·동재(東齋)·서재(西齋)·동무(東舞)·서무(西舞)·제기고(祭器庫)·내삼문(內三門)·외삼문(外三門)·홍살문 등으로 이루어졌다. 태안향교에는 39위의 위패가 안치되어 있는데, 이중 18위가 본국인(本國人)이고 나머지 21위는 중국인(中國人)이다.
또한 태안향교는 1975년 2월 5일에 문화재 자료(文化財資料) 제198호로 지정되어 관리중에 있는 목조와즙(木造瓦葺)의 팔짝집(八作家)이다.
이 5층석탑은 태안읍 남문리의 탑골 자리하고 있는데, 이 탑의 생김새가 미루어보아 고려후기(高麗後期)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탑은 높이 약 5미터의 화강석으로 이루어 졌는데, 지난 1975년 2월 5일에 문화재 자료 제 201호로 지정되어 현재 보호 중에 있다.
이 백화산성은 태안읍 동문리에 자리한 백화산의 정상에 축조된 석성(石城)인데, 이는 고려(高麗)의 충렬왕(忠烈王) 13년(1287)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 성의 크기는 둘레 619미터에 높이 3.3미터로 되어 있는데, 언제 폐성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현재는 일부 지역에 성벽만 남아 있을 뿐이다.
또한 이 백화산성은 지난 1975년 2월 5일에 문화재 자료 제212호로 지정을 받아 현재 보호중에 있다. (보다 구체적인 내용은 제2장 고성조(古城條)를 참조하기 바란다.)
이 숭의사는 남면 양잠리(南面 兩潛里)338번지에 위치한 소주가씨(蘇州賈氏)의사당을 일컫는 것인데, 이는 조선조(朝鮮朝)의 철종(哲宗)2년 (1851)에 세워진 것이다. 이 사당에는 가유약(賈維약)·가상(賈祥)·가침(賈琛)등 삼세(三世)의 위패를 안치하고 있는데, 지난 1988년 8월 20일에 문화재 자료 제 300호로 지정되어 현재 관리 중에 있다. (보다 구체적인 내용은 제6장 누정과 사당조를 참조하기 바란다.)
이 상옥최씨고택은 태안읍 상옥리 816에 자리한 목조초가(木造草家) 가옥을 일컫는 것인데,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지금으로부터 약 200여년 전에 세워진 고택(古宅 )이다.
이 고택의 규모를 살펴보면 안채·사랑채·문간채 등으로 이루어졌는데, 총 건평은 78.9평(261㎡)이며, 대지는 310평으로 되어 있다. 또한 이 고택은 지난 1987년 4월 10일에 전통건조물(傳統 建造物)제4호로 지정되어 현재 관리 중에 있다.
모감주나무는 안면읍 승언리 방포 해안에 400여주가 군락을 이룬 야생 식물로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경기, 황해, 경상남도에 분포되어 있는데 중국이 원산지이다.
이 나무는 무환자과에 속하는 낙엽활엽수로서 잎은 난형 또는 타원형이다. 꽃은 6∼7월 사이에 황색꽃이 피며 그 열매는 모감주라하여 9∼10월에 익는데 옛날에는 염주로도 사용했다고 한다. 안면도의 모감주나무는 중국에서 해수를 타고 그 씨앗이 해안에 밀려와 자생했다고도 전하며 또 다른 설에 의하면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되기 전에 중국어부들이 안면 앞 바다에서 고기를 잡다가 해안에서 임시 거주하던 중, 중국에서 씨앗을 가져와 심었다는 설도 구전된다.
란도는 근흥면 가의도리 산22번지로 안흥항에서 동력선으로 2시간 가량 떨어진 서해의 작은 무인도로 100여M의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친 섬이다. 이 섬은 1950년대 만해도 40여명의 어민들이 이곳에 모여 고기를 잡으며 한철 보내기도 하던 곳이다. 현재는 괭이갈매기가 주로 서식하며 바닷제비, 섬새 등도 서식하고 있다. 괭이갈매기는 매년 3월부터 6월말가지 이곳에서 알을 낳아 번식을 하게 되며 번식이 끝나는 7월부터 먹이 조건이 좋은 해안에 몰려들어 생활한다. 이 섬의 면적은 47,603㎡이며 산정에는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룬 섬이다. 1982. 7. 19 조류학자 경희대교수 원병오가 답사 및 조사 보고하여 1992. 11. 16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괭이갈매기 : 갈매기과에 속하는 바닷새로 울음소리가 고양이 소리와 비슷한 데서 이름지어짐. 한편 날개길이35㎝ 가량.
동북아시아의 특산으로 훗가이도 우리나라 연안에서 번식하고 큐우슈우 중국남부에서 겨울을 남. 학명 : 해묘( 海猫)
안면읍 승언 2구에서 보존하고 있는 상여는 약 1백20년 전 조선말엽 왕실에서 사용했던 상여로 추측되며 이곳에서 보관 사용하게된 동기는 조선말 승지 김병년(1855∼1927)이 황태자(이규인)를 가르치던 중 8세 때 세상을 떠나자 국장을 치르게 되었는데 이때 안면도 승언 2구 주민들이 상여를 잘메어 황태자의 국장을 치른 후 보상으로 상여를 받아 현재까지 보관하게 되었음. 상여의 길이는 2.2m, 폭 1m, 높이 1.5m이고 양장틀의 용마루와 앞뒤부분에 용상을 그려 넣었거나, 투각을 하여 그 모양이 화려하며 양장틀 네 귀에 봉두를 조각하여 배치했는데 그 전체적인 모양이 섬세하고 고전적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높음.
1990. 5. 28 도 문화재자료 제315호로 지정관리하고 있음.
건축의 형태를 보면 중도리 상량문 대공이 우담바라형 무늬(연꽃무늬)로 고려시대에 건축된 평야의 보통문 양식과 동일하며 건물 내부의 출모와 외부 소서 등이 조화 있게 조각되었으며 대량(보)이 웅장하여 문화재적 보존가치가 큼. 이 건물은 1527년 (이조 중종 22년)에 건축하고 1691년 (숙종 17년)에 중창하였으며 1751년 (영조 27년 )에 3중창 1798년 (정조 22년)에 4중창 1957년 5중창 1994년에 해체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90년 9월 27일 도문화재유형 133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옥파 이종일선생 생가지는 1979년 3월 1일 원북면 반계리에서 박춘석(태안여상교장)에 의해 발견됐다. 옥파 이종일선생은 1858년11월 6일 태안군 원북면 반계리에서 태어나 1925년 아사 순국 할 때까지 일생으로 나라사랑으로 일념으로 헌신한 애국사상가이다. 정부에서는 1919년도에 사당을 건립하고 주변 토지를 매립하여 기념관과 주변정비를 추진하고 있다. 1990년 12월 31일 도지정기념물 제 85호로 지정되어 현재 관리하고 있다.(구체적인 내용은 제3절 독립투사편을 참조하기 바람)
옛날 안개가 자욱한 밤에 어민들이 귀항하지 못하고 표류할 때 지금의 당산에서 밝은 불빛이 비추어 모두 무사히 귀항했다고하여 이곳에 당집을 짓고 매년 정월 초이튿날과 초사흘날에 당제를 지내게 되었다 한다. 여기에 모시는 신으로는 임경업장군을 비롯 성주님, 군왕장군님, 삼불님, 사해용왕 장군님의 다섯 신이 있으며 임경업 장군을 주신으로 모시는데 그 이유는 임경업장군이 전쟁 중에 군량이 떨어져 병사들의 사기가 저하되자 대나무 창을 황해 바다에 내려꽂으며 주문을 외우자 인근 바다의 조기들이 모두 떠올라 이를 잡아 식량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조선조 고종8년(1904) 오병선 군수가 목애당이란 서문을 씀. 백성을 잘 다스리고 사랑한다는 뜻의 목애당은 2벌대로 쌓은 장대석 기단 위에 네모뿔형 주초석을 놓고 방형기둥을 세워 정면6간, 측면 3간으로 평면을 구성하였다. 공포는 무출목 초익공계로 익공은 주두와 덧물려 외부로 돌출되었고 주초의 급단면은 직선으로 사절되어 있으며 내부는 량봉으로 되어 대량의 단부를 받치고 있는데 익공 끝을 길게 돌출시키지 않고 둥글게 마감하여 놓았다. 가구는 전방 토주와 후방 평주사이에 내고주를 세운후 퇴량과 대량으로 결구한 일고주 오량집이며 홑처마 팔짝지붕으로 태안군 관아의 동헌 건물로 보인다.
소근진성이란 고려때부터 오근이포라는 이름으로 내려오던 충청도 서쪽의 대표적이 포구였다. 1404년인 조선조 태종4년 소근포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진"을 설치하고 왜구를 소탕하여 "소근포진"이라 불려지게 되었는데 1467년인 세조 12년 종 3품인 "좌도수군첨절제사"를 주고 당진포만호, 파지도만호, 안흥량만호를 관할하였다. 1514년인 중종 9년 산하에 있던 당진포만호 및 파지도만호 첨절제사들이 와서 둘레 2165자(약 630m)높이 11자(약 3m)의 돌로 된 성을 쌓았는데 임오군란 이후 군제도 폐지에 따라 "첨절제사"가 철수하고 "진"도 폐지되기에 이르렀다. 성의 서쪽으로 성내부가 바다에 접하면서 비교적 평탄한 면을 이루고 있고 동. 남. 북면은 해발 40∼50m 능선 상에 축조하였는데 성 외벽으로 가파른 비탈에 접해 있어서 지형상 천연의 요새임을 실감케 한다. 1993. 12. 31 도지정 기념물 제 93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근흥면 안기리에 위치하고 있는 안양사는 구한말의 유학자인 간제(1841(현종7)∼1922)선생을 제향하는 사우이다. 간제선생은 24세때 경연에서 보양관으로 추천되었으나 간신들의 모략으로 취임하지 못하자 산중으로 들어가 후학을 가르쳤다. 수차에 걸쳐 나라에서 벼슬을 주었으나 사양하였다.
노백의 주선으로 근흥면 수창동(현 수룡리)에 와서 수년간 거쳐하며 이 지역 유생들을 가르쳤다.
후일 그의 제자들이 선생의 유덕을 추모하여 영당을 건립, 영정을 모시고 매년 3월 3일과 9월9일에 제향을 올리며 참배하고 있다.
991년 4월 23일 태안군 향토 지정문화재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